Chapter. 2
이재연
UNIST 인문학부 부교수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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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바로그
[1918년]
十一月어느날午後 金東仁君朱요한 두친구가
[나의 하숙집에]
意外에불숙차저왓습니다. 몃마듸雜談을하자 金君은 싱글
싱글우스면서 單刀直入的으로 “雜誌나하나 안해봐?” 하고 말을꺼냄니다.
나도平素부터 생각을 하든터이라 곳 대담햇습니다 “해보지! 지금은
浪人이 되어 北平가잇는 金煥君紹介하야 都合네사람으로 同人雜誌를 하
기로 되였습니다.
1
野心滿滿
한그
題號
[야심만만한 제호]
라는 기사에 등장하는 구절에서
전영택은 한국 최초의 문학 동인잡지, 창조』
(1919
-
1921)
2
탄생을 회고한
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인 김동인은 근대적 작가를 꿈꾸며 서양과 일본의
작품들을 탐독하고 있었다. 일본의 메이지 학원에서 교내 잡지를 만든
험이 있었던 주요한은 젊은 한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문예지를 내는
1
원전: 전영택, 「野心滿滿한그題號」, 『조선일보』
(1996.9.20.)
, 『한국 문단의 역사와 측면사』, 383쪽에
서 재인용.
2
문학 동인 집단과 이들 동인들이 펴낸 잡지를 구별하기 위해 잡지를 지칭할 때는 『창조』, 『폐허』,
『백조』를, 집단을 지칭할 때는 겹낫표 없이 창조, 폐허, 백조를 사용한다.
혹 전체적인 통일성을 위해 "여는 말" - "맺는말"로 바꾸면 어떠실는지요?
78
심이 있었다. 평양을 동향으로 절친한 사이인 두 사람은 마찬가지로
안북도 출신의 서북 사람 전영택의 하숙집을 찾는다. 흔쾌히 이들의 제안
에 동의한 전영택은 미술을 전공하는 김환을 소개한다. 예술가를 지망하는
이들 명의 청년들이
野心滿滿
한그
題號
”를 가진 창조』펴내게 된다.
김동인과 주요한의 잡지 발행 제안을 받고 듯이 기뻐하는 전영택의
습에서, 문학 동인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그를 고무시켰는지 짐작해
있다.
근대 시기의 여러 문학 동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세 집단은 창조,
(1920
-
1921)
, 백조
(1922
-
1923)
이다. 기존의 문학사에서는 “창조 시대”나 “백
시대”와 같이 이들의 활동 시기를 특정하거나, 1910년대 후반과 1920년
초반을 “동인지 시대”로 통칭하면서 이들의 경계를 규정했다.
3
동인
단들을 별도로 혹은 집단적인 전체로 묶으면서 문학사 연구자들은, 해럴드
블룸
Harold Bloom
용어를 빌리자면, 한국 작가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대한 불안감
the anxiety of influence
”을 추적하면서,
4
동시에 새로운 근대문학
사상을 개척한 자생적인 예술운동을 드러내고자 했다.
5
한국 근대문학 공동체의 형성을 다루는 연구의 최근 경향을 살펴보면 방
법론적인 변화가 눈에 두드러진다. 새로운 연구 방법은 서구문학의 근대성
에 의탁해 한국문학을 정의하려던 기존의 작가 연구나 전통적인 문학사 연
구에서 탈피해 문학 재생산 체제는 물론이고 개념사와 정기간행물 연구 등
을 아우르게 되는데, 그 초점은 문화현상을 구성하는 작가, 미학, 인쇄매체
3
조영복, 『1920년대 초기 시의 이념과 미학』.
4
김윤식, 『염상섭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 1~2; 『김동인 연구.
5
백철, 『신문학 사조사』
(개정증보판)
; 조연현, 『한국현대문학사』.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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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상호작용을 검토하는 맞춰져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근대문학의 이념을 확립해 갔는지,
6
잡지들은 문학적, 사회
이념을 가진 작가들을 동원해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7
그리고 기성
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신진 작가들을 소개하고 문학계를 확장해 나갔는지
8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행 연구들의 강조점이 작가, 매체, 이념 간
상호작용에 있음에도 동인은 비슷한 문학적 지향, 교육, 지역적 배경을
가진, 변함없이 고정된 작가 주체로 남았다. 창조파의 동인을 예로 들면 이
들은 모두 평양북도 출신으로 일본에서 공부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향한 인물들로 인식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출판과 관련해서 창조파의 동인들은 자신의 잡지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아마도 잡지의 짧은 수명에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총독
부나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간신문은 물론 일반 잡지, 종교 간행물, 아동 잡
지를 포함해 다양한 매체들과 적극적으로 함께 작업했다. 말하자면, 김동
인이 창조파의 일원이라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그가 다른 작가나 작가
단과 맺는 사회적 관계는 글을 기고하는 곳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 편집자에 따라 구별된다.”
9
예를 들어, 겉보기에 김동인은 다른 동인 집
백조파의 일원인 나도향
(1902
-
1926)
과는 관련이 전혀 없지만, 사람
6
김현주, 『사회의 발견: 식민지기 ‘사회’에 대한 이론과 상상, 그리고 실천
(1910~1925)
; 이철호, 『영
혼의 계보: 20세기 한국문학사와 생명담론』.
7
최수일, 『개벽 연구』; Jae
-
Yon Lee. “Authors as Creators of Art: The Collaborative Shaping of
Literary Writers in Ch’angjo”; Ji
-
Eun Lee.
Women Pre-scripted: Forging Modern Roles through Korean
Print
.
8
박헌호 외, 『작가의 탄생과 근대문학의 재생산 제도』.
9
이재연, 「작가, 매체, 네트워크」, 269쪽.
80
『개벽』
(1920
-
1926)
을 통해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각 동인 집단
폐쇄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잡지를 매개로 집단 사이에 일정한
연관이 존재할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이전 논문에서 필자는 1920년대 문학장에서 작가 관계를 확인하기
출간 기록에 관한 자료들을 검토하였다. 특히 1917년에서 1927년 사이
주요 신문과 잡지를 통해 출간된 소설의 생산량을 집계했다. 수집한
료에 따르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를 포함해 작가는 1,000명이 넘었
지만 이에 비해 정기 간행물의 수는 100개 미만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신문
이나 잡지를 두고 여러 작가들의 동시 투고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동시적
투고를 통해 이루어진 동인-비동인 간의 네트워크는 동인이 시사하는
것보다 포괄적인 범위의 작가 집단들을 살펴볼 있게 했다.
10
이러한
네트워크 분석은, 복수의 작가들이 일정한 매체와 맺은 실제적 관계뿐
니라 당시에는 작가 자신들에게 역사적으로 인식 가능하지 않던 연관까지
시각적으로 재현해 주었다. 동시 투고라는 문학적 행위를 통해 매체를
경유하여 맺어진 작가 관계망을 “작가 네트워크”로 부르는 한편, 필자는 이
네트워크의 공시적인 다이어그램을 분석하여, 김명순과 최서해같이 한국
문학사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들이 네트워크의 서로 다른 층위에 있는
작가들을 이어 주는 있어서는 이광수와 같은 문단의 총아보다
할을 했음을 보여 주었다. 과정에서 “근대 한국문학 형성기의 작가들은
고립된, 정적인 개인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문학적, 매체적 세력들과
제라도 함께 작업할 있는 복수의 사회적 관계라는 맥락 속에 존재”했음
10
이재연, 「작가, 매체, 네트워크」, 292쪽.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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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혔다.
11
이전 연구가 1920년대 작가들이 정기 간행물을 매개로 상호작용하던 문
세계라는 그림에서 작업했다면, 연구는 작가 네트워크에서 동인
변화하는 위상을 추적하기 위해 통시적 접근 방식을 적용한다. 이를
해, 1917-1927년을 시기로 구분한다. (1) 1917년 1월에서 1919년 1월까
지: 첫 동인인 창조파가 등장하기 이전 시기. (2) 1919년 2월에서 1923년 9
월까지: 주요 동인이 부침한 시기. (3) 1924년 10월에서 1927년 12월까
지: 소위 문학 동인지 시대 이후 시기. 본 챕터는 각 시기별 동인의 주요 인
물들과 그들의 입지를 파악하는 한편 네트워크 분석을 통한 통시적 접근
방식이 세 동인
(창조, 폐허, 백조)
의 역사를 탐색하는 데 유익함을 강조할 것이
다. 또한 동인지 이전 시기의 소시오그램
sociograms
통해 문학사에서 남성
작가들의 그늘에 가렸던 김명순과 나혜석 같은 여성 구성원들이 각 동인의
숨은 핵심 세력을 형성하는 기여했음을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구체적
사례를 분석하기에 앞서, 문학 연구에 정량적 연구 방법을 적용한 사례들
을 살펴보고 왜 우리가 문학의 텍스트가 아니라 네트워크
(특정한 추상 형태)
그림을, 그것도 프랑코 모레티
Franco Moretti
말한 “멀리서 읽기
distant reading
라는 방식을 통해 읽으려 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11
이재연, 「작가, 매체, 네트워크」, 262쪽.
82
1. 멀리서 읽기
영문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일부는 문학적 사건을 역사의
부로 기술하기 위해 소수의 핵심 작품들을 선별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를 들어, 이언 와트
Ian P. Watt
는 다니엘 디포
Daniel Defoe
, 사무엘 리처드슨
Samuel
Richardson
, 헨리 필딩
Henry Fielding
에 대한 꼼꼼한 독해를 통해 영국소설의 등장
추적했다.
12
와트는 철저하고 꼼꼼한 독자였겠지만 문제는 남는다.
엇보다 “디포, 리처드슨, 필딩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닌 작품들은 어찌해야 하
는가?”
13
문학적 기법인 꼼꼼히 읽기
close reading
는 마거릿 코헨
Margaret Cohen
말한 “읽히지 않는 위대한 작품들
the great unread
”, 역사에서 사라지는 방대한
작품들이 잊히는 있어 속수무책이다.
14
만일 우리가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포함해서 보다 포괄적인 문학사를 구성하려 한다면, 다시
가지 물음이 생겨난다.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있을까? 그리고 그런
대안적인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있을까? 특히 우리가 어떤
국의 문학이 아니라 “
(서로 관련된 문학들의)
하나의 세계문학체제
one world literary
12
Ian P. Watt.
e Rise of the Novel: Studies in Defoe, Richardson and Fielding
.
13
Mathew L. Jockers.
Microanalysis: Digital Methods and Literary History
. p.8.
14
Margaret Cohen.
e Sentimental Education of the Novel
. p.23.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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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15
염두에 둔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방법론이 필요할 것인가?
점에서 모레티는 “멀리서 읽기”를 제안하고 있다. 문학과 인문학은 물론 사
회과학에서도 힘을 얻은 방법론은 애초에 “다른 사람들의 연구로 이루
어진 패치워크”를 통해 문학적 정보와 지식으로부터 추상을 구성한다.
16
기서 나온 추상 형태들을 주의 깊게 독해함으로써 “멀리서 읽기”는 더
위의 문학 체제를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와 힘을 분석한다.
그의 『그래프, 지도, 나무
Graphs, Maps, Trees: Abstract Models for a Literary History
에서 모레티는 문학적 텍스트와 역사를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3종의 인위
구성물”을 제안한다. “정량적인 역사의 그래프, 지리학의 지도, 진화론의
나무.” 모레티는 영국, 일본, 덴마크, 이탈리아, 스페인, 인도, 나이지리아의
문학사에서 이차적인 자료들을 수집하고, 지구적 범위에서 소설의 발생을
비교, 분석하기 위한 발판으로 그래프들을 생성했다. 그는 메리 밋포드
Mary
Mitford
우리 마을
Our Village
(1824
-
1832)
독해하면서 지도를 이용해 어떻게
인물, 사건, 사물이 상호작용하며 플롯을 형성하는지를 보여 준다. 여기서
지도들은 주요 인물들의 일상이 보여 주는 순환적인 세계가 원거리에서 사
람과 사물의 운동을 연결하는 산업화의 선형적 세계에 의해 구심력을 잃고
해체되기 시작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나무가 형태론적 분석틀로 선택된
이유는 탐정소설과 같은 문학 장르의 특성들이 성장하고 분기하는 과정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나무들을 이용해 모레티는 아서 코넌 도일
Arthur Conan
Doyle
에 가려져 잊힌 소설을 발굴하고 어떻게 특정한 탐정 이야기들이 살아
15
Franco Moretti. “Conjectures on World Literature.” p.56.
16
Franco Moretti. “Conjectures on World Literature.”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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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서, 단서 제시에 있어 보다 세련된 방식을 갖추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모레티는 형태가 사회적
social forces
이라는 강력한 주장을
놓는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문학에서 텍스트와 사회적 행위자
social agents
연결하는 방식으로 추상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이다.
문학사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그래프와 네트워크를 사용하면서 연구자들
영문학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리처드
Richard J. So
호이트
Hoyt Long
191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 미국, 중국, 일본에서
학 잡지에 실린 시의 기록을 수집하여 사회 연결망 분석
SNA
을 통해 모더니
스트 시인 집단의 등장을 비교하였다. SNA연결의 유형이 어떤 식으로
사회구조를 구성하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한 행위자를 다른 행위자
와 연결”해 주는 “접촉, 유대, 연관”을 조사하는 방법이다.
17
이에 대한 고전
적인 예는 마크 그래노베터
Mark S. Granovetter
1973년 논문 약한 연결의 힘
“The Strength of Weak Ties”
이다. 약한 연결이란 개인의 아주 가깝지는 않은
친구, 친구의 친구, 안면을 사이를 일컫는다. 하지만 커다란 정보
트워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약한 연결이 정보 전달자로서는 강한
연결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보다 효과적인 도움을 구직자들에게 제공한다.
이와 유사하게 소와 롱은 개별 시인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보다
문학 네트워크를 형성하는지 조사했다.
18
특정 잡지에 대한 일관된
고가 시인들 사이에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전제에서, 연구자
만일 복수의 작가들이 잡지에 동시에 그리고 정기적으로 작품을
17
John Scott.
Social Network Analysis
. p.3.
18
Richard J. So & Hoyt Long. “Network Analysis and the Sociology of Moder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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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다면 그들은 약하든 강하든 그들이 선택한 잡지에 의해 매개되는 사회
적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로 이들은 문학의 주요 행위
자들과 이들이 매체와 맺는 상호연관을 가시화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상위
집단을 연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며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주도 세력을 형
성했지만 문학사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을 밝혀냈다.
이들의 구체적인 연구와 모레티의 멀리서 읽기라는 일반론에 기대어 여
기서는 1920년대 문학장에서 소수의 동인들이 더 큰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
과정을 추적한다. 네트워크 분석을 위해 소설 기고를 자료로 사용한
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모레티가 그러하였듯이, 필자 또한 오랫동
연구자들의 관심에서 도외시되었던 익명의, 신원불명의, 잘 알려지지
작가들을 찾아내서 논의하고자 한다. 소설의 세계에 대한 그러한
림은 주요 작가들이 무명의 작가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보여 줄 것
이다. 두 번째로 소설 투고의 전체 개수를 통해 우리는 속성에 기반한 관점
이 아니라 관계에 기반한 관점에서 동인 집단을 바라볼 수 있다. 속성 가치
주로 연구 대상의 특성을 가리킨다. 이는 본 연구에서 문학 집단의 “비슷
한 성향
like-mindedness
”을 보여 주는 특성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동일하거나 가
까운 출신지, 교육과정, 문학적 지향 등이 포함된다. 관계적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가지 이동 목표
(여기서는 작가와 매체)
간의 고정되지 않은, 그러나
활발한 상호작용을 검토할 있다. 1920년대는 근대 한국문학의 형성기
였으며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도서 시장은 신진 전업 작가들을 재정적으
로 뒷받침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작가들은 신문기자, 잡지 편집자, 정기 기고
가와 같은 부업을 겸하고 있었다. 이런 문학생산 체제의 불안정성도 우리
가 도서보다 정기 간행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본 연구를 위해 1917년
86
에서 1927년까지 소설 투고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1917년은 이광수
본격적인 서구식 소설 『무정』『매일신보』
(1910
-
1945)
발표한 해이며,
1927년은 1920년대 한국을 대표하던 잡지 하나인 『조선문단』
(1924
-
1927)
폐간된 해이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10년은 다양한 문학 이념
과 양식의 분기와 작가, 작품, 정기 간행물의 폭발적인 성장이 두드러진 시
기이다.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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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료: 소설 기고
1920년대 정기 간행물을 매개로 작가 네트워크를 제시하기 위해
자는 먼저 4개의 신문과 87개의 잡지에 익명을 포함해 1,019명의 작가가
기고한 2,284개의 작품을 목록으로 작성했다. 이를 위해 『한국 근대잡지
소재 문학 텍스트』라는 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하였다. 1906년에서 1945년
까지 368개 잡지에 실린 50,939개의 작품을 목록으로 만든 아카이브에
『한국잡지개관 호별목차집』이나 『한국문학잡지사상사』같은 기존
연구에는 없는 희귀 잡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19
목록을 참조하여
1917년에서 1927년 사이에 출간된 소설 목록을 추출하였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창조』, 『한국지광』
(1914
-
1930)
, 여자계』
(1917
-
1921)
, 삼광』
(1919
-
1920)
같이 1920년대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잡지들 중 일부가 이 아카이브에는
누락되어 있어, 그러한 작품은 하나하나 추가하였다. 이와 더불어 당시의
4개의 주요 신문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대일보』)
게재된 소설을
일일이 찾았고, 그 결과 515명의 작가가 쓴 847편의 소설이 연구자료로
19
http://modernjournal.org 한국 근대잡지 소재 문학 텍스트, 2013년 7월 14일 확인. 이 사이트는
현재 확인할 수 없다. 대신 이 소설 출판기록은 다음에서 확인 가능하다. 최동호, 최유찬 편, 『한
국 근대잡지 소재 문학 텍스트 연구』 1~4.
88
가되었다.
작가의 필명을 찾아 실명과 연결하는 작업은 지난하지만 중요한 일이었
다. 동일 작가의 작품이 무명씨나 혹은 다른 작가의 것으로 인식되어 네트
워크 상에서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결 작업에는 기존의 참고 문헌
도움이 되었다.
20
그렇지만 익명과 무명의 작가
(1,019명)
여전히
예상보다 많았다. 많은 익명의 작가가 단 한 차례 기고를 했다는 점은 이들
을 독자로 추정해 보게 한다. 또한 한 사람의 작가가 복수의 필명으로 기고
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20
권영민 편, 『한국 근대문인 대사전』; 이상경 편, 『부인 신여성』; 이선영, 『한국문학의 사회학』; 숙
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화연구소 편, 『한국여성문인사전』.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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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가 네트워크의 공시적 분석
이번 장에서는 1917년에서 1927년의 시기를 하나의 단위로 취하는 네트
워크 그래프에서 세 주요 동인의 위치를 확인할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연도
별로 소설 투고의 양을 살펴보고 작가, 작품, 정기 간행물의 총수에서 나타
나는 변화의 함의를 검토해 보자. 한국소설 창작의 증감은 [그림 1]에 제시
된다. 각각의 막대는 반년간의 생산 평균을 나타내고 그래프는 S-형태를
보이며 소설 투고 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여
다. 1919년 2월에 『창조』가 첫 호를 발간했고, 1923년 9월에는 『백조
지막 호를 냈다. 전체 11년을 구분한 세 시기 ―동인지 시대 이전
(1기: 1917년
1월
-
1919년 1월)
, 동인지 시대
(2기: 1919년 2월
-
1923년 9월)
, 동인지 시대 이후
(3기:
1924년 10월
-
1927년 10월)
명확한 경계를 보이며 소설 생산이 3기에서
점에 도달하는 것을 보여 준다. 1기에는 76개만이, 2기에는 521개, 3기에
1,687개의 작품이 각각 등장하며, 3기의 소설 부문은 1기에 비해 약 22배
증가한다. 1926년 해에만 554개 작품이 출간되는데 이는 1917년에서
1922년까지 출간된 소설의 총량을 넘어선다.
소설 생산량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지 가능한 답은 정기 간행
총수가 증가한 데서 찾을 있다. 신문 쪽을 보자면 식민지 시기
(1910
-
90
1945)
내내 발간된 『매일신보』가 있다. 세 개 주요 민간신문 가운데 조선일
보』『동아일보』1920년부터, 『시대일보』1924년부터 발행되기 시작
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고선
考選
했던 개벽』, 조선문단』같은 주요
지들 또한 각각 1920년과 1924년부터 출판을 시작하였다. 새로운 잡지와
신문의 출현은 1920년에서 1924년까지의 갑작스러운 투고 수 증가를 부분
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을 같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이후 시기에
보인 소설 생산량의 급증의 이유를 밝히기 어렵다. 이에 대한 답은 소설
가의 수가 증가한 데서 찾을 수도 있다. 각각 1기에는 38명, 2기에는 278명,
3기에는 780명의 작가가 모습을 보인다. 익명의 작가를 포함하고 또한
일한 작가가 모든 시기에 걸쳐 다시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수치
예상을 상회한다. 우리는 분명히 2기와 3기에서 작가들의 급격한 증가
그림 1 한국 정기간행물에 실린 소설 작품
(1917-1927)
http://modernjournal.org의 자료를 저자가 수정, 보완. 각 연도는 두 시기로 나누어 표시(a=전반기,
b=후반기)
200
180
160
140
120
100
80
60
40
20
0
1917_a
1917_b
1918_a
1918_b
1919_a
1919_b
1920_a
1920_b
1921_a
1921_b
1922_a
1922_b
1923_a
1923_b
1924_a
1924_b
1925_a
1925_b
1926_a
1926_b
1927_a
1927_b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91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반드시 개별 작가의 다작을 의미하지는
는다. 실제로 작가당 소설 평균 작품 수는 3기에 2.16
(1.687/780)
으로 다시
승하기 전에는 1기의 2
(76/38)
에서 2기의 1.87
(521/278)
으로 하락한다. 이러한
기록은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는 전문작가와 더불어 많은 비전문작가들이
독자란을 통해 등장했다가 이후 활동을 중단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러면 주요 동인지에 속한 작가들은 소설 생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
는가? 1917년에서 1927년까지 29명의 동인지 작가가 423개의 작품을 출간
했는데 작가당 평균 14.6개이다. 이는 위에서 전체 소설에 대한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한국 근대문학 형성사는 대개 문학 동인의 시대
(본 연구에서 2기)
를 강조하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많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잡지를 통해 한꺼번에
장해 정기적인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출간의 단순한
래프는 창작된 소설 수라는 면에서 동인 시대 전후 시기가 동인 시대보다
더는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3기에 보이는
작가와 작품의 급격한 증가 속에서 주요 동인의 작가들은 서로 간에, 그리
비동인 작가들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가? 그들의 입지는 동인이 성립
하기 이전인 1기에는 어떠했는가?
서론에서 주장했듯이 우리는 동인이라는, 비슷한 성향을 공유했다고
주되는 소규모의 배타적 작가 집단에서 작가 네트워크로 눈을 돌릴 필요
있다. 네트워크란 “사람, 조직, 국가 등으로 이루어진 대상들 간의 일련
관계”이다.
21
네트워크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사회관계망 분석은
21
Charles Kaudushin.
Understanding Social Networks: eories, Concepts, and Findings
. p.3.
92
다 큰 구조적 체계 속에서 행위자와 행위자 집단에 의한 상호작용, 확장, 운
동의 패턴을 조사할 수 있다. 문예 분야에서 이 사회관계망 분석을 통해 우
리는 “
[문예는]
공동의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창조된다”
점에서 “예술의 사회성”을 인식하게 된다.
22
달리 말해, “사회관계망
의 작가들은 언제나 복수이며 상호영향의 구성단위”가 되는 것이다.
23
작가
들의 상호작용은 그래프를 통해 시각화되며, 여기서 노드
(
node
, 점: 여기서는
22
Howard S. Becker. “Art as Collective Action.” p.775.
23
이재연, 「작가, 매체, 네트워크」, 261쪽.
그림 2 작가
-
잡지 네트워크에서 동인 작가들의 위치
(1917-1927)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93
작가)
는 엣지
(
edge
, 선: 여기서는 소설 투고 수)
에 의해 다른 노드
(매체)
로 연결된다.
다음 그래프는 잡지를 대상으로 1917년에서 1927년 사이 작가-잡지 네트
워크를 검토한다.
소설 생산의 세계를 담은 이 공시적 이미지는 노드가 클수록 보다 큰 투
수를 나타낸다. 노드가 중앙에 위치한다면 그것은 주변에서 쉽게 접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개벽』
(그래프에서 2)
『조선문단』
(96: 이
그래프 내의 번호를 지칭)
대부분의 작가들을 유인하는 주요 잡지들이다.
두 잡지는 더 큰 노드들과 함께 중앙에 자리한다. 눈에 띄는 다른 노드들
로는 신여성』
(71)
, 조선지광』
(414)
, 어린이』
(91)
, 학생계』
(103)
있다. 『신
여성』젊은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근대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잡지였고,
『조선지광』은 카프
(
KAPF
: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의 지원을 받는 좌파
지였다. 『어린이』학생계』아이와 청소년을 위한 잡지였다. 주독자층
매우 다양함에도 우리는 잡지들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이유를
있다. 별건곤』
(35)
, 『천도교회월보』
(101)
함께 신여성』『어린이』
『개벽』의 소위 자매지들로 같은 천도교 출판인에 의해 운영되고 발행되
었다. 『개벽』『어린이』는 두 잡지 모두에 기고를 하고 천도교의 3대 교주
인 손병희
(1861
-
1922)
의 사위가 되는 방정환
(1899
-
1931)
을 매개로 굵은 선으로
연결된다. 방정환, 박달성, 천도교 편집자들과 기자들은 자매지에도
기고를 했으며, 정기 기고자로 명망 있는 작가들의 인력 자원을 공유한
으로 보인다.
[그림 3]은 천도교 잡지 형태보다 중요한 것이 동인에 속한 작가들의
위치라는 점을 보여 준다. 창조 동인인 김동인, 전영택, 이일, 오천석은
변부에 위치한 『학생계』, 『반도시론』
(132)
은 물론 『영대』
(512)
, 『서울』
(46)
,
94
광』
(43)
같은 인접한 잡지에도 기고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중앙의 『조선
문단』의 주요 세력을 구성하면서 그 영향력을 네트워크의 주변부로 확장한
다. 또한 창조 동인들이 계몽을 위한 교육을 목표로 하는 청춘』
(116)
도쿄
젊은 한국 유학생들이 운영한 『학지광』
(136)
같은 1910년대 청년 잡지
에도 자주 기고를 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1910년대와 1920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다른 한편 그래프는 앞서 언급한 천도교 잡지들이 박영희, 이상화, 현진
건, 나도향과 같은 백조 동인들에 의해 『개벽』『조선문단』에 연결되고 있
음을 보여 준다. 이 연결에는 『폐허』 출신의 작가들도 한몫하였다. 다시 말
해, 폐허 동인들은 1920년대 후반 유력 잡지의 관심을 동시에 누렸다.
소설보다 시와 비평을 강조한 잡지의 성격 때문에 폐허 동인들의 소설
기고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들도 여전히 지명도 있는 작가들이었다.
네트워크가 시각적으로 보여 주듯이, 염상섭은 『개벽』『조선문단』이라는
주요 잡지를 연결하는 특히 두드러진 존재였다. 요약하자면, 1920년대
작가 네트워크에 대한 공시적인 분석이 보여 주는 바는 창조, 폐허, 백조 동
인들이 『개벽』『조선문단』중심으로 문학적 세력을 연결, 확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이다.
24
『개벽』『조선문단』연결하는 동인 작가들의 위상은 [그림 3]과 [그림
4]의 대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림 3]은 29명의 동인 작가들이 서로
다른 정기 간행물에 한 기고를 보여 주는 반면, [그림 4]는 네트워크상의 비
24
원래 이 그래프는 창조, 폐허, 백조의 연결망을 색깔을 달리하여 표시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흑백
으로 표시하였다. 각 동인의 개별 연결망을 확인하고자 하는 독자는 영어 논문을 확인하기 바란
다.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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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동인 작가-잡지 네트워크
(1917-1927)
. 동화와 민담은 제외함.
그림 4
-
동인 작가
-
잡지 네트워크
(1917-1927)
. 동화와 민담은 제외함.
96
동인 작가들의 위치를 보여 준다. 다시 말해, [그림 4]는 네트워크 전체에서
[그림 3]에 해당하는, 동인 작가들의 연결망을 제외한 부분을 보여 준다. 두
그래프의 대조가 직관적으로 보여 주듯이 주요 동인 잡지들을 통해
학적 경력을 시작한 작가들은 『개벽』『조선문단』작품 출간의 주요
대로 삼는다. 이들은 두 잡지 사이의 공간
([그림]의 다이어그램에서 2와 96 사이)
채우는 동시에 주변부의 군소 잡지들로 뻗어 가는 몇몇 시도들을 보여
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동인 작가들은 예의 주변부의 잡지들은 물론이
신여성』, 『조선지광』, 『천도교회월보』, 『청춘』같은 네트워크상의
분포 잡지들을 포함해 『개벽』, 『조선문단』과 함께 왕성한 활동을 보여
다. 하지만 비동인 작가들이 동시에 『개벽』『조선문단』연결되는 경우
드물다는 점에서 이들의 세계는 마치 잡지를 대표하는 세력에 의해
양분된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다이어그램들은 『개벽』『조선문단』
의해 대표되고 확장되는 문학 집단의 핵심 연결고리를 형성한 것이
주요 동인 집단의 작가들이라는 이전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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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인 작가들에 대한 통시적인 분석
작가 네트워크의 공시적인 그래프는 세 주요 동인에 속한 소설 작가들의
전반적인 위상을 확인하는 도움을 준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어그램들은 잡지의 수명 전체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작가들과 매체
사이의 사회적 관계의 실제상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창조』, 『폐허, 『백
조』같이 단명한 잡지들이 마치 1917년에서 1927년까지 내내 출간이
루어진 것처럼 제시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각 집단 내에서 누가 가장
생산적인 작가인지, 해당 작가가 기간 내에 어느 잡지에 가장 자주 기고를
했는지를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절에서는 남성 위주의 동인 내의 여성
작가들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서 주요 동인 소속 작가들의 위상에 나타
통시적인 변화를 검토한다. 시기의 중심 인물들을 살펴보며 우리는
김명순과 나혜석과 같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 위주의 『창조』『폐허』
립에 실질적 역할을 담당했음을 확인할 것이다.
창조 동인의 1기에 관한 [그림 5]는 1919년 해당 잡지의 창간에 앞서 작가
들의 활동을 보여 준다. 물론 “창조 동인의 1기”는 역사적으로 정확한 용어
는 아니다. 그럼에도 창조 동인의 전사는 동인의 미래 구성원들 중 가장 활
동적인 인물들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놀랍게도 김동인, 전영택, 김환을
98
포함해 애초에 잡지를 시작한 중에서 오직 주요한만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유일한 여성 구성원인 김명순
(1896
-
1951)
이나 1910년대 후반
의 한국문학장에 관한 현재 논의에서는 거의 잊힌 작가인 이일
(1892
-
?)
이 작
수에서 주요한을 능가한다. 이는 명의 주도로 잡지가 출범하기 이전
이미 알려진 작가들의 손에서 창조 동인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음
을 의미한다. 특히 여성 작가인 김명순은 이후에 마치 이 남성 중심의 문학
동인을 보충하는 인원인 1920년 7월호
(7호)
위해 충원된 것으로 알려
진다. 이와 달리 창조 동인의 1기가 보여 주는 바는, 후에 창조 동인으로 알
려진 재능 있는 작가 집단을 결집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것이 다름
그림 5 창조 동인 1기
(1917년 1월에서 1919년 1월까지)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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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김명순이었다는 점이다.
창조 동인 2기를 보여 주는 [그림 6]에서 우리는 창조 동인이 당대의 정기
간행물들을 매개로 문학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세를 확장해 가는 방식을 가
늠해 있다. 여전히 활동적인 김명순과 이일은 활동 무대에 『개벽』
『신여자』포함하는 한편, 1910년대 유력한 잡지였던 『청춘』『태서문예
신보』와는 결별한다. 『창조』중심으로 보면 창간을 주도한 작가의
재가 분명히 두드러진다. 동인을 대표하는 김동인은 자신이 자금을 대고
편집한 『영대』와 명망 있는 『개벽』에 자주 기고했다. 전영택은 『서광』『신
생명』과 같은 기독교 계열 잡지와 작업했다. 한편 김동인은 화가인 김환을
그림 6 창조 동인 2기
(1919년 2월부터 1923년 9월까지)
100
소설 작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창조』에서 출간을 계속하길 거부한다.
25
마도 이것이 김환이 작품을 계속 출간했음에도 『창조』『개벽』있는
심에서 떨어져 주변부에서 발견되는 이유일 것이다. 후일 문인이 아니라
교육자로 알려지게 되는 또 다른 활동적인 성원인 오천석은 자신이 편집자
일하던 『학생계』심지어 다른 동인 잡지인 『백조』통해서도 작품활
동을 했다. 하지만 『개벽』『창조』에는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
그 또한 주변부에 위치한다.
[그림 6]은 2기의 주요 인물들과 함께 동인이 특정한 정기 간행물
태를 선호했음을 시사한다. 문예를 포괄하는 총독부 신문과 잡지가 그것이
다. 신문의 경우 창조 동인들은 총독부 관보인 『매일신보』에만 기고했으며,
한국인이 설립하고 지원한 『조선일보』『동아일보』 『시대일보』2기
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에는 기고하지 않았다. 이는 백조 동인들이 『조선
일보』와, 폐허 동인이 1920년에서 1923년까지 『동아일보』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총독부 신문과 작업하도록 신문의 편집자
들이 창조 동인들을 끌어들인 것인지 동인들이 직접 결정한 것인지를 확인
하기 위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기에 이일
지속적으로 작품을 내고 새로 충원된 임노월이 신문을 위해서 소설
번역하고 연재하면서 『매일신보』와의 연결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지의 경우, 동인 이름을 “창조”라 붙이고 의기양양하게 “예술을 위한 예술”
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사실이 말해 주듯이 창조 동인들은 문예지를 선호했
다. 잡지마다 사회, 종교적 지향이나 대상 독자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25
김윤식, 『김동인 연구』, 120
-
121쪽.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101
들은 일관되게 창작물을 출간하는 『개벽』, 『서울』, 『영대』, 『서광』작업했
다. 한편, 널리 알려진 아이들 대상 잡지 『어린이』는 창조 동인들의 출간
록에 보이지 않는다.
창조 동인이었던 작가들이 1920년대의 모든 주요 신문으로 세를 확장한
것은 3기에서다. 이러한 발전을 주도한 인물은 다름 아닌 김명순으로 그녀
한편으로 『매일신보』와도 작업하면서도 『조선일보』『동아일보』에도
자주 기고하였다. 김명순이 다른 회원들보다 늦게 동인이 되었을 때만
『창조』고작 편의 시를 발표했을 뿐임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래프는 놀랍게 다가올 것이다. 『개벽』새롭게 떠오르는 『조선문단』 사이
그림 7 창조 동인 3기
(1924년 10월에서 1927년 12월)
102
두터운 선은 분명 김동인과 전영택과 같은 주역들의 활동 덕분일 것이
다. 하지만 김명순 또한 두 잡지와 관계를 맺고 창조 동인이 선호하는 잡지
신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달리 말해 그녀는 1기에 남성 작가들
결속시키고 3기에 1920년대 동인들이 주요 신문과 잡지들과 더욱 밀접
연계를 맺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김명순의 활동이 동인지를
남성 작가들이 독점하는 대한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반발인지, 그래서
작품의 발행처를 다양화하는 것이 자신의 문학적 경력을 유지하기 위한 절
박한 수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것이 다양한 정기간행물들
에 작품을 출간할 수 있었던 여성 작가라는 보기 드문 명성을 보여 주는 것
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 동인을 논의하는 데 있어 그녀
제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1917년에서 1927년까지 창조 동인의 성장
남성 작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공헌에도 빚지고 있다.
기존의 한국문학사에 따르면, 폐허 동인은 명망 있는 비평가 염상섭과
오상순 같은 상징주의 시인들이 주도했고, 이들은 모두 프랑스의 퇴폐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26
하지만 [그림 8]은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그 차이
부분적으로 설명하자면, 폐허의 주된 관심이 시와 비평인 반해 그래
프의 초점은 소설에 놓여 있다는 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잡지의 출범 이전에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던 소설 작가들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다. 여성 잡지 『여자계』, 『매일신보』와 작업하던 화가 나혜석, 매우 이
례적으로 창조 동인과 폐허 동인을 겸했던 시인이자 번역가인 김억, 상대
적으로 알려진 소설가 민태원이 그들이다. 나혜석이 식민정부의 신문
26
백철, 『신문학 사조사』
(개정증보판)
, 171쪽.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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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잡지 모두에 작품을 발표한 것은 남성 작가들이 신문이나 잡지
어느 한쪽에 발표를 했지만 모두에 발표를 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
이례적으로 보인다. 그녀가 폐허 동인의 미래를 형성할 서로 다른 형태
의 정기간행물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창조 동인의 김명
순의 경우처럼 여기서도 동인이 출범하기 이전에 활동하던 한 여성 작가의
존재는 폐허 동인의 잊힌 전사를 떠올리게 한다. 나혜석의 소설 발표는
시기에 동인의 다른 구성원들이 거의 소설을 발표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
하면 이 동인의 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성취로 여겨진다.
27
한편, 폐허 동인 2기 동안 염상섭은 동인을 대표하는 유명인사였다. 하지
그림 8 폐허 동인 1기
(1917년 1월부터 1919년 1월까지)
104
만 정작 『폐허』그가 작품을 발표한 주요 매체에 들지 않는다. 이 잡지는
『폐허이후』를 제외하면, 2호까지만 발행되었을 뿐이고 게다가 초점이 시와
비평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염상섭의 초기 중편인 『표본
실의 청개구리』
(1921)
『개벽』에, 다른 중편 『해바라기』
(1923)
『동아일보』
에 발표되었다. 폐허 동인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염상섭, 민태원, 후
27
이광수가 『무정』을 연재한 1년 후인 1918년에 나혜석의 자전적 이야기 「경희」는 근대적인 여성
의 도래를 예고했다. 계몽이라는 커다란 이상을 위해 헌신하는 열정적인 청년들을 묘사하는 이
광수의 소설과는 달리, 나혜석의 작품은 결혼 초기 의무적인 가사일을 하는 와중에 교육받은
여성이 겪는 일상과 독립적인 인간이 되려는 희망을 조명하고 있다. 이 원숙한 작품은 폐허 동인
의 전사에 속하는 나혜석의 위상을 더욱 강화해 준다.
그림 9 폐허 동인의 2기
(1919년 2월에서 1923년 9월까지)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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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의 일원이 되는 이익상의 작품을 실었다는 점에서 『동아일보』『매
일신보』특별하다. 반면 『조선일보』연결되는 작가는 오상순뿐이다.
이러한 대비는 폐허 동인이 선호한 신문 혹은 역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나혜석은 1920년의 결혼과 1922년의 만주 이주로 분주한 시기를 보냈다.
그녀는 1923년 모성을 여성의 본성으로 보는 견해를 부정하며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지만, 작품활동에서는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28
그 대신 김원주
(필
명은 일엽)
남편의 재정적 지원을 통해 발간한 『신여자』를 통해, 『매일신
보』동아일보』통해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이러한 주요 인물들의
활동에 힘입어 폐허 동인은 여성과 교육받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요
잡지와 유력 신문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있었지만, 『폐허』라는 잡지
자체는 이러한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그림 10]이 보여 주듯이 염상섭은 1924년에서 1927년 사이에 각각 6개
작품과 5개 작품을 『개벽』『조선문단』에 기고하면서 이 두 잡지를 연결하
는 데 있어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시대일보』를 잇는 축이었다.
중편 『묘지』
(1922)
는 좌파 계열 『신생활』
(1922
-
1923)
에 연재되던 도중, 잡지가
총독부의 검열로 폐간되자 중단된다. 그러자 그는 제목을 『만세전』
(1924)
로 바꿔 가며 자신이 사회부 부장으로 일했던 『시대일보』연재한다.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폐간 이후 폐허의 영향력은 기존의 『매일신보』『동아
일보』에 더해 『시대일보』를 포괄하기에 이른다. 『조선일보』의 경우는 어떨
까? 여기서 이익상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는 매일신보』, 『개벽』, 『문
28
나혜석, 「모된 감상기」, 『동명』
(1923.1.1-21.)
.
106
예운동』, 그리고 『조선일보』까지 포함한 다양한 매체와 함께 작업을 했다.
염상섭과 나혜석과 같은 동료보다 알려지긴 했지만 이익상은 파스큘라
PASKYULA
같은 초창기 좌파 문학조직에서 활동했다.
29
그는 또한 나카니시
이노스케
(1887
-
1958)
『너희들의 뒤에서』
(1923)
같은 좌익 동조자의
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1기의 나혜석, 2기의 염상섭과 김원주, 3기의 이익
상과 같은 폐허 동인들은 활발한 문학활동을 통해 1920년대 문학 네트워크
가로지르는 강력한 연결망을 구축했으며, 이는 단명에 그친 그들의
29
이 조직의 이름은 구성원들의 머리글자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그림 10 폐허 동인 3기
(1924년 10월에서 1927년 12월)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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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백조 동인은 다른 동인들에 비해 뒤늦게 문학장에 등장했다. 김기진
(1903
-
1985)
, 박영희, 나도향과 같은 핵심 성원들은 서울의 배재학당 학생들
서로 친교를 맺었다.
30
그래서 백조 동인은 구성원들의 다채로운 지역
배경과 문학적 지향 때문에 흔히 첫 동인인 창조와 비교, 대조되곤 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동일한 세대로 모두 1900년대 초에 태어나 10대 후반이
나 20대 초반에 문학적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평양 출신들로 구성된
동인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한 데 반해, 서울 토박이인 백조
인들의 초기 낭만주의에 대한 관심은 고전에 기반한 문학으로 옮겨 갔다.
앞서 언급한 역사적 설명에 익숙한 학자들에게 백조 동인의 1기는 네트
워크에 등장한 이름이 잡지의 젊은 선구자들로 알려진 김기진이나 박영희
아니라 앞선 세대에 속하는 방정환이라는 점이 놀랍게 다가올 것이다.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말을 두루 알리고 어린이날을 제정한 인물이다.
도교 지도자 손병희의 사위였던 방정환은, 평등이라는 종교적 이념을 사회
개혁을 통해 구현하고자 천도교 청년회의 주요 구성원이기도 했다.
연유로 1920년대, 그의 젊은 시절의 활동은 다분히 좌파적인 색채를
고 있다. 그래프에 따르면 이 중요한 인물은 『천도교회월보』빈번히 작업
하는 와중에 백조 동인의 전사를 이루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림 12]는 백조 동인들이 『백조』기반을 두고 다양한 매체들로 확장
가는 시기인 2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 작가들 사이에 천재로
성이 자자했던 나도향은 편의 단편을 시도한 후에 『동아일보』장편
30
김병익, 『한국 문단사』, 72쪽.
108
『환희』
(1922
-
1923)
성공적으로 연재한다. 인물의 심리적 세부를 묘사하는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는 『개벽』『백조』단편들을 발표하면서 명성
이어 간다. 잡지의 다른 연결선은 현진건에 의해 『조선일보』확장
된다. 뛰어난 단편 작가인 현진건은 인물들의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적 반전으로 유명했다. 잡지 『백조』『개벽』에서 신문 『동아일보』『조선
일보』로의 연결은 『개벽』의 발간에 관여하는 한편 『어린이』에 60편에 달하
동화와 민담을 발표한 방정환에 의해 강화되고 확장되었다. 하지만
빠른 독자라면 감지했을 법하게 백조 동인 2기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매일신보』전혀 연결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동인 창조와 폐허가
그림 11 백조 동인 1기
(1917년 1월부터 1919년 1월까지)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109
들의 전사
(1기)
에 총독부 신문과 관련을 맺고 있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백조
동인의 사례는 더욱 이례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매일신보』문학 집단에
끼친 영향이 고르지 않았고 문학 도제 집단이 문학장에 들어오고 경력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도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백조 동인 2기에 『개벽』과의 연결은 박영희가 1925년부터 문예란의 편집
자가 되어 김기진 같은 동료 작가들의 기고를 받으면서 더욱 다변화한다.
한때 “예술을 위한 예술” 진영에 깊숙이 관여했던 두 작가는 이제 문학적
지향을 옮겨 식민지 빈민들의 비참한 삶을 직시하는 “생활을 위한 예술”을
주장한다.
31
천도교의 세속적인 개혁운동에, 새로 소개된 계급투쟁에 기반
그림 12 백조 동인 2기
(1919년 2월에서 1923년 9월까지)
110
을 둔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접목한 김기진과 박영희는 경제적 평등이 이루
어진 사회의 도래를 선도하는 문학을 요청했다.
32
이들의 정신은 1기부터
활동한 어린이 문학의 제창자로, 시대일보』조선일보』활동을 넓혀
동화를 기고하던 방정환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결과 2기에 중앙의
벽』에서 『백조』, 『조선일보』, 『어린이』이어진 연결선은 3기에 이르러
전방위로 더욱 두텁고 복잡하게 뻗어 나간다. 하지만 여전히 백조의 동인
31
이철호, 『영혼의 계보: 20세기 한국문학사와 생명담론, 286쪽.
32
한기형, 『개벽』의 종교적 이상주의와 근대문학의 사상화」.
그림 13 백조 동인의 3기
(1924년 10월에서 1927년 12월까지)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111
은 누구도 『매일신보』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 이것이 백조 동인들의 식
민정부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신문의 편집진과 개
인적인 연고가 없었기 때문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혹은 작품 발간
록이 완전하지 않아 필요한 자료가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1920년대의 주요 소설 작가들로 구성된 동인 집단
다양한 매체들과 맺는 관계에 있어서 각각 서로 다른 성장 경로를 밟았
다는 것이다. 각각의 시기에 작가-매체 네트워크에 대한 통시적인 분석이
없었다면 동인의 전사를 포함해 이러한 경로들이 검토될 없었을
이다.
112
결론
나의 고고학에서 발자크와 스탕달은 여타 생산자들과 마찬가지로 경제
적, 문화적 수익을 약속하는 장르 시장에서 틈새를 노리는 문학 생산자들
로 등장한다.
[
]
발자크와 스탕달은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소설의 지배적
인 실천 양식 -여성 작가들의 감상소설- 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면서 시
장의 점유율을 확보하고자 했다.
33
본 연구는 정기 간행물에 의해 매개된 1920년대 한국의 문학장을 공시적
으로, 또 통시적으로 접근하였다. 먼저, 자료에 대한 공시적 분석을 통해
지와 관련한 작가들의 입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창조, 폐허, 백조 등 3
동인들의 입지는 『개벽』『조선문단이라는 주요 잡지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할 있었다. 또한 우리는 소수의 동인 집단들이
학생산의 장에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네트워크의 중
심에서 복잡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있었다. 공시적인 네트워크가
주는 이러한 복잡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동인 작가들의 역동적인
33
Margaret Cohen.
e Sentimental Education of the Novel
. p.6.
Chapter 2. ‘문학 동인의 시대’ 전후: 한국 작가 네트워크의 통시적 분석 1917-1927
113
장을 시사한다. 두 번째 접근법의 목적은 네트워크를 배경으로 시기별
(“동인
작가의 시대” 이전, “동인 작가 시대”, “동인 작가 시대” 이후)
동인에 속한 작가들의
위상 변화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창조나 폐허 동인과 별반 관련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명순, 나혜석이 동인의 전사 시기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신문이란 매체가 각각의
문학 집단의 형성과 확장에 다양한 층위에서 관계하고 있음을 확인할
있었다. 『매일신보』는 창조와 폐허 동인들을 다른 작가들과 연결시키는
통로 중에 하나였지만 백조 동인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문학
단의 성장에 대한 통시적인 접근은,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군소 작가들
과 여러 정기간행물 사이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보여 주었고 1920년대 문학
구축에 있어 작가와 매체가 맺었던 복잡한 연결의 과정을 상상할
도록 해 주었다.
앞서 언급한 발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 중심의
문학 동인의 전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광수가 한국 최초의
편소설 무정』연재를 시작했던 1917년, 같은 해에 김명순이 자신의
소설 「의심의 소녀」발표했다. 후인 1918년에는 나혜석이 유명한
단편 「경희」를 발표한다. 이는 1919년 이후로 문학장에 들어오는 창조의
동인, 폐허의 염상섭, 백조의 나도향과 같은 후배 남성 작가들보다 앞서는
것이다. 우리는 문학장에서 김명순과 나혜석의 존재가 남성 작가들의 이목
―때론 불편했을― 받으면서 저마다 자기 집단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려
시도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에
성과 여성 작가들이 거의 나란히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간 문학사회학적 설
명이 필요한 문제가 아닌 그저 역사적인 기술의 대상으로만 취급되어
114
것으로 보인다. 여성 작가들이 주도한 근대문학사를 포함해 다수의 페미니
문학의 성과가 있었다.
34
그러나 남성 주도의 동인 집단의 형성 이전부
여성 작가들이 활약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을 받은 적이
었던 듯싶다.
이에 관한 가지 생각을 프랑스 여성 작가들의 위상을 연구한 마거릿
코헨에게서 찾을 수 있다. 코헨은 18세기에 발자크와 스탕달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등장했는가를 질문하면서 그러한 리얼리즘이 자연히 등장한 것이
아니라 감상성
sentimentality
의 문법에 정통했던 여성 작가들과 치열하게 경쟁
하면서 부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35
그녀의 주장은 1920년대 한국문학의
상황과 관련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20년에 작가들은 감정을
통제하는 유교적 군자의 모델을 거부하면서 불가해한 자아를, 구속되지 않
은 감정의 관찰자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36
특히 창조 동인들은 허구이든
실이든 눈물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을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유대와
창조적인 우정을 공고히 하려 했다.
37
1920년대 한국 정기간행물에 감상적
이야기가 넘쳐 나던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감정 표현을 둘러싼 무대
에서 당시의 남성 작가들이 여성 작가들과 경쟁하는 모습을 떠올려
있다. 앞으로 문학에 대한 정량적인 접근을 통해 기존의 문학사에서 잊힌
작가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발견하고, 문학사회학을 통해 대안
적인 서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34
이상경, 『한국근대여성문학사론』.
35
Margaret Cohen.
e Sentimental Education of the Novel
. pp.6
-
10.
36
황종연, 「문학이라는 역어
(譯語)
」.
37
J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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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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